우리나라 속담에는 ‘병 주고 약 준다’라는 말이 있다. 이 뜻은 다른 사람을 못살게 하거나 어려움에 빠뜨리고 나서 마치 선심을 쓰듯 도와주는 체하는 교활한 사람의 태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쨌든 모순(矛盾)이 내포되어 있다. 처음부터 문제를 만들지 않았다면 필요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동의 기저에는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깔려 있다. 상대를 일부러 힘들게 만든 뒤 해결해 주며 주도권을 잡기 위함이다. 이 구조적 모순은 권력관계나 친밀한 관계에서 자주 나타난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종전을 치닫고 있다. 이 전쟁으로 이란만 피해를 보지 않았다. 미국은 물론 글로벌 경제의 피해가 컸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촉발된 에너지 파동은 많은 국가를 어렵게 했다. 특히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타격이 컸다. 애초 이 전쟁은 트럼프의 오판으로 시작됐다. 베네수엘라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마두로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뤄낸 ‘족집게 전략’에 크게 고무되어 이란에서도 그것이 통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하메네이 신정(神政)이 무너지고 ‘이란의 민주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미국의 수많은 공습에도 지금 이란 민주화 세력의 목소리나 반정부 세력의 존재감은 보이지 않는다. 외신 보도는 이란 국민이 지금 외부 공습에 쑥대밭이 되어가는 나라를 보며 정신 줄을 놓고 있다고 전할 뿐이다. 미국 공격 앞에 ‘반정부’가 들어설 여지조차 없다는 뜻이다. 이 전쟁은 나라의 문제는 자국민 힘과 노력과 예지로 풀어나가는 것이지 외부에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준다. 베네수엘라에서 성공은 국토의 초토화가 없었기에 가능했다. 트럼프가 그것을 몰랐다.
두 국가는 물론 인접국과 세계적으로 큰 상처를 남긴 이 전쟁이 종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제일 큰 상처를 입은 이란으로서는 피해 복구가 우선이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인프라의 신속한 재건이 국민 불만을 잠재우고 반정부 세력에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발맞춰 병을 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약을 준비하고 있다. 종전을 위해 준비한 달콤한 사탕은 455조 원 규모 ‘이란 재건 펀드’이다. 해당 기금은 정부 자금이 아니라 이란에 투자하고자 하는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구조다. 이란 제재 완화라는 밑밥을 깔아 놓았다.
이란은 핵 개발로 모든 자산이 동결됐다. 미국이 자신들의 말만 잘 들으면 이것을 단계적으로 완화해 줄 것이라고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이 재건 펀드 조성에 대해 비판도 적지 않다.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일으킨 전쟁의 부담을 동맹국에 떠넘기려 한다는 지적이다. 자국 내 소식통도 이 재건 프로젝트에 한국과 유럽, 일본 민간기업들이 관심을 보인다는 말을 흘리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입장이 중요해졌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트럼프의 뜻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처지에 호응하고 기회를 모색하는 것이 최선이다.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다시 중동 건설 붐을 일으킬 기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이란 전쟁 피해 재건은 이란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도 피해 국이다. 더구나 이들 국가의 에너지 인프라 상당수가 한국 건설사에 의해 건설됐다. 이 피해 시설 복구 물량을 한국 건설사가 수주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지역에서 한국 건설사가 수행한 프로젝트는 무려 44조 원 규모다. 우리 업계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심정으로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수요업계의 잔치가 곧 우리 잔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동지역은 과거부터 국내 건설사에 핵심시장이었다. 특히 정유, 가스, 석유화학 플랜트, 도로 건설 등 산업시설물, 건설 분야에 독보적인 기술과 경험을 쌓아왔다. 오늘날 우리 경제가 세계 10위 안에 들 수 있었던 종잣돈이 중동에서 벌어들인 외화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었던 중동이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트럼프가 일으킨 병을 우리가 치료제로 재건할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병 주고 약 준다’라는 속담이 결코, 나쁘지만 않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도 국내 건설사들의 우수한 기술력과 수행실적이 있기에 가능하다. 기대를 키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