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故 최창걸 명예회장 1주기…비철금속산업 개척한 ‘제련업계 거목’
기술과 원칙, 사람을 향한 믿음으로 반세기 성장의 토대 세워
“나는 혁신이나 개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늦은 것이다. 매일매일 조금씩 발전해 나가면 한꺼번에 큰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 개혁보다는 변화가 중요하다.”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생전에 강조했던 말이다.
그는 요란한 구호보다 묵묵한 실천을 믿었다. 하루하루 쌓아 올린 기술과 경험,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의 땀이 결국 기업과 산업을 바꾼다고 생각했다. 급격한 개혁보다 꾸준한 변화가 더 큰 발전을 이끈다는 그의 믿음은 평생의 경영철학이자 고려아연 성장의 밑바탕이었다.
2025년 10월 6일 별세한 최창걸 명예회장은 한국 비철금속 제련산업을 개척하고 고려아연을 세계적인 종합비철금속 기업으로 성장시킨 경영인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떠난 지 1년. 고인이 걸어온 길은 단순한 한 기업인의 성공사를 넘어선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부족했던 시절, 한국에 비철금속 제련산업의 기반을 세운 도전의 역사였으며 원칙과 신뢰, 사람의 가치를 지키며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일군 시간이었다.
■ 불모지에 세운 비철금속산업의 토대
1970년대 초 대한민국은 자원 빈국이었고, 비철금속 제련산업의 기반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정부가 1973년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을 추진하면서 울산 온산에 비철금속 산업기지를 조성하는 방안이 마련됐지만, 대규모 제련소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일은 누구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도전이었다.
최창걸 명예회장은 이 시기 정부와 금융기관 관계자들을 만나 사업 추진 방안을 협의했고, 1974년 8월 1일 고려아연 설립에 참여했다.
사업 초기 가장 큰 난관은 자금과 기술이었다. 제련소 건설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지만 국내에서 이를 모두 조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국내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 IFC를 직접 설득해 사업자금을 확보했다.
IFC는 당초 온산제련소 건설에 7,000만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최창걸 명예회장은 5,000만달러로도 건설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대형 건설회사에 모든 공정을 맡기는 턴키 방식 대신 구매와 건설을 직접 관리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실제 공사를 4,500만달러에 마무리했다.
공사비를 절감하면서도 기술과 설비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았다. 당장의 비용이나 효율만을 따지기보다 최신 기술의 도입과 향후 사업 확장 가능성을 중시했다. 눈앞의 성과보다 먼 미래의 경쟁력을 먼저 생각한 선택이었다.
1978년 온산제련소가 준공된 뒤에도 어려움은 이어졌다. 국내에는 대규모 제련소를 운영한 경험과 기술이 충분하지 않았다. 시운전과 조업 정상화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최창걸 명예회장은 경영관리체계를 정비하고 현장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며 제련소의 정상 가동에 힘을 쏟았다. 단기간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려 하기보다 매일의 문제를 개선하고 기술을 축적하는 데 집중했다. 그가 강조했던 ‘매일의 변화’가 현장에서 실천된 시간이었다.
■ 기술과 설비에 미래를 걸다
최창걸 명예회장은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사장과 부회장을 맡아 고려아연의 기술 기반과 생산 역량을 본격적으로 확대했다.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생산시설을 확충했으며, 아연·연·동 제련을 연계하는 통합공정을 구축했다. 새로운 연 제련 기술을 도입하고 아연괴를 런던금속거래소에 등록하면서 국제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
1990년에는 기업공개를 추진했다. 기업의 경영 내용을 시장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적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영풍정밀, 서린상사, 코리아니켈 등의 설립에도 참여하며 제련과 가공, 유통으로 이어지는 사업 기반을 넓혔다.
1992년 3월 회장에 취임한 뒤에는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하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자”는 신조를 더욱 분명히 했다.
그에게 기본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기술과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약속을 지키며, 기업의 재무적 안정성과 신뢰를 지키는 일이었다. 필요하다고 판단한 기술과 설비에는 과감하게 투자했지만 원칙을 벗어난 성장은 경계했다.
아연과 연 제련설비를 지속해서 확충했고, 호주에 SMC를 설립하며 해외 생산 기반도 마련했다. 이 같은 장기적인 투자는 고려아연이 국내 제련기업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종합비철금속 기업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됐다.
그는 제련산업이 환경과 공존해야 한다는 점에도 일찍부터 주목했다.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폐기물로만 보지 않고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바라봤다.
아연 잔재를 청정 슬래그로 전환해 시멘트 원료로 활용하는 재처리 기술을 상용화하고, 버려질 수 있는 부산물에서 유가금속을 추가로 회수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환경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은 오늘날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자원순환 사업의 출발점이 됐다.
2002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이후에도 그의 관심은 멈추지 않았다. 경영 일선에서는 한발 물러났지만 환경친화 기술과 신기술 개발, 해외 자원개발, 희소금속과 도시광산 등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탰다.
산업용·자동차용 폐배터리와 폐인쇄회로기판, 아연재 등을 제련 원료로 활용하고 금·은·인듐·안티모니 등 유가금속을 회수하는 사업도 확대됐다. 매장된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도 기술을 통해 새로운 자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사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 “회사는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드는 것”
최창걸 명예회장이 남긴 유산은 기술과 설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람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최신 설비를 갖춰도 이를 운용하고 발전시키는 사람이 없다면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임직원 해외연수와 인재 양성에 꾸준히 투자했고, 장학사업을 통해 배움의 기회를 넓히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인재를 선발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했다. 개인의 배경이나 관계보다 능력과 책임을 우선하고, 구성원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자 했다.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은 고인이 고려아연을 특정 가문이나 개인의 회사가 아니라 임직원 모두가 함께 만드는 회사로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직원들을 단순한 고용 관계의 대상이 아니라 회사를 함께 일구는 동료이자 가족으로 여겼다. 직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없는지 먼저 살폈고, 다른 회사의 좋은 제도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배우고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사람 중심의 철학은 고려아연의 노사문화에도 깊이 스며들었다. 회사와 구성원이 성장을 함께 만들고 그 성과를 함께 나누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어려웠던 시기에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을 시행하지 않은 배경에는 구성원과 함께 위기를 넘겠다는 믿음이 있었다.
장기간 이어진 무분규와 안정적인 경영은 그 믿음이 남긴 결실 가운데 하나다. 고려아연은 2000년 1분기부터 2026년 2분기까지 106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사람 중심의 조직문화와 함께 오랜 기간 축적한 통합제련 기술, 다양한 금속 포트폴리오와 원료 조달 역량이 어우러진 결과로 평가된다.
최창걸 명예회장은 한 사람의 능력보다 조직의 힘을 믿었다. 한 명의 스타가 회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구성원들이 함께 회사를 성장시킨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성취를 앞세우기보다 임직원들의 노력과 공로를 강조했다. 세계적인 제련기업으로 성장한 결과 역시 특정 개인이 아닌 모든 구성원이 함께 이룬 성과로 바라봤다.
■ 나눔으로 이어진 사람에 대한 믿음
사람을 향한 최창걸 명예회장의 관심은 회사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사회와 소외된 이웃에게도 이어졌다.
그는 부친인 최기호 초대회장이 강조했던 배움의 가치를 이어받아 아동과 청소년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1981년 명진보육원 후원을 시작으로 아동복지사업을 꾸준히 지원했고, 여러 학교와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기업이 거둔 이익의 일부는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원칙도 지켰다. 사회복지단체와의 협력을 확대하고 임직원들이 나눔에 동참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데 힘썼다.
‘전 임직원 기본급 1% 기부 운동’과 매칭그랜트 제도를 통해 임직원의 자발적인 기부 참여를 독려했으며, 봉사활동에도 직접 참여했다. 나눔을 일회성 지원이나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라 기업과 구성원이 함께 실천해야 할 일상적인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그가 추구한 나눔은 단순히 도움을 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교육과 자립의 기회를 마련해 스스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의미를 뒀다. 사람의 가능성을 믿었던 그의 경영철학이 사회공헌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매일의 변화’
최창걸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가 강조했던 현장과 기술, 사람과 원칙의 가치는 고려아연 곳곳에 남아 있다.
현재 고려아연은 기존 비철금속 제련사업의 경쟁력을 토대로 신재생에너지·그린수소, 이차전지 소재, 자원순환을 3대 축으로 하는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추진하고 있다.
최윤범 회장은 온산제련소와 해외 사업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뒤 2019년 대표이사에 올랐으며, 2022년 회장에 취임했다. 현장에서 문제를 찾고 기술과 장기투자로 답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고인이 남긴 경영철학을 이어가고 있다.
고려아연은 2023년 처음 개최한 ‘2023 Investor Day’에서 2033년 매출 25조3,000억원을 중장기 목표로 제시했다. 기존 제련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신재생에너지, 이차전지 소재, 자원순환 사업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최창걸 명예회장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특정한 사업이나 숫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가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산업의 길을 열었던 도전정신이며,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 기술을 축적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동시에 원칙을 지키고 사람을 키우며 구성원과 성과를 나눠야 기업이 오래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그는 거대한 혁신을 말하기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한 작은 변화를 강조했다. 현장의 문제를 하나씩 개선하고 기술과 경험을 차곡차곡 축적하는 일이 언젠가 큰 차이를 만든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자본과 기술이 부족했던 대한민국에 비철금속 제련산업의 기반을 세웠고, 작은 제련회사를 세계적인 종합비철금속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힘이 됐다.
고인이 걸었던 자리는 이제 후대의 몫으로 남았다. 그가 강조했던 매일의 변화는 여전히 고려아연의 현장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국 비철금속산업의 한 시대를 개척한 최창걸 명예회장. 그가 남긴 도전과 원칙, 기술과 사람에 대한 믿음은 한 기업의 역사를 넘어 대한민국 산업사에 오래 기억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