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 철강 80兆 지원, 산업 전환의 시험대에 서다

[대장간] 철강 80兆 지원, 산업 전환의 시험대에 서다

  • 철강
  • 승인 2026.04.29 06:05
  • 댓글 0
기자명 에스앤엠미디어 snm@snm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정부가 철강산업을 향한 대규모 금융지원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중동 정세 불안과 주요국 보호무역 강화로 자금 압박이 심화된 철강 및 후방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총 80조 원 규모의 범정부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한다고 밝혔다. 철강문제가 개별 업종의 경영난을 넘어 기계·전자·조선·건설 등 제조업 전반의 리스크로 확산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정책의 출발점이다.

최근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철강 업계와의 간담회에서 철강산업을 글로벌 수요 둔화, 물류비 상승, 환율 변동성, 관세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대표적인 피해 업종으로 지목했다. 정부는 철강을 ‘기간산업’으로 규정하며 위기의 전이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금융위가 제시한 금융지원 규모는 총 80조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25조6,000억 원은 정책금융을 통해 공급되고, 민간 금융권은 53조 원 이상의 자체 신용 지원에 나선다. 단순 신규 대출 확대가 아니라 금리 감면, 만기 연장, 상환 유예 등 금융비용을 낮추는 방식이 병행된다. 그동안지속적으로 요청해 온 ‘현금 흐름 안정 장치’를 정책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미다.

더 파격적인 것은 은행과 보험권의 자본규제 합리화다. 금융당국은 운영리스크 손실인식 기준을 완화하고 내부신용평가모형 심사를 가속화하여, 은행권에서 74.5조 원, 보험업권에서 24.2조 원 등 최대 98.7조 원의 추가 자금 공급 여력을 확보했다.

이것은 단순히 돈을 더 풀겠다는 선언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담보와 보증 위주 영업 관행에서 벗어나, 미래 성장성이 높은 전략 산업과 수출 현장에 자금이 흐르도록 물길을 돌리겠다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체질 개선으로 비춰진다. 특히 보험업의 인프라 특례 범위를 신재생에너지와 AI 기반 시설 등에까지 확대한 것은,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 숙제를 안고 있는 철강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부담을 낮추기 위해 오는 6월부터 신용보증기금이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직접 발행해 은행과 증권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발생하던 수수료를 줄인다. 이를 통해 기업의 채권 발행 비용은 약 50bp(0.5%포인트) 낮아질 전망이다.

금융 지원은 본질적으로 기업에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다. 1조 원 규모의 ‘기업구조혁신펀드 6호’가 이달 중 조성을 마무리하고 철강을 비롯한 핵심 산업의 사업재편에 투입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업계 내부의 목소리처럼, 금융 지원이 수요 자체를 창출하거나 관세 리스크를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못한다.

금융위원회의 이번 조치는 일종의 ‘정책적 추경’과 같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강조했듯, 철강 산업의 위기는 기계와 전자 등 제조업 전반의 리스크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이다. 금융권이 규제 완화를 통해 빗장을 풀고 정부가 마중물을 부었다면, 이제 공은 산업계로 넘어왔다.

전략적으로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해 보인다. 정책금융과 보증, 운전자금 지원을 활용해 고부가가치 판재류, 강관, 후판 프로젝트 물량 등 경쟁력이 있는 품목은 방어하되, 저마진 범용재의 무리한 출혈 수출은 경계해야 한다. 자금 여력이 생겼다고 해서 구조 개선 없이 생산량 유지에만 머문다면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80조 원 금융지원의 성패는 자금 규모가 아니라 방향에 달려 있다. 구조조정, 녹색 전환, 수출 시장 다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느냐, 아니면 단기 유동성 처방에 그치느냐가 갈림길이다. 철강을 살리는 금융은 많아졌지만, 철강을 바꾸는 금융이 될 수 있을지는 이제 산업과 정책, 시장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저작권자 © 철강금속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