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보국’ 의미를 새로 써야

‘제철보국’ 의미를 새로 써야

  • 철강
  • 승인 2026.05.2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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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윤철주 기자 cjyoon@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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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이래 지금까지 제철보국(製鐵報國)이라는 생각을 잠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철은 산업의 쌀입니다. 양질의 철을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하여 국부를 증대시키고,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하며 복지사회 건설에 이바지하자는 것이 곧 제철보국입니다.”

이 발언은 ‘한국의 철강왕’ 청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978년 임직원 연수원 특강에서 한 말로,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명언이다. 여기서 많은 이들이 제철보국을 ‘좋은 철을 생산해 국가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자연스럽게 제품의 ‘질(質)’부터 머리에 떠오른다.

그런데 발언을 다시 보면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해야 한다는 표현이 눈에 띈다. 시대를 감안하면 철강의 질도 중요하지만, 산업의 쌀인 철강을 저렴하게 많이 생산하고 팔아야 진정한 제철보국이 가능하다고 봤기에 나온 발언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철강업계는 이 제철보국의 의미를 새로 써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저렴하게, 단순히 많이 생산·판매하는 것이 더 이상 ‘철을 생산해 나라에 보답한다’는 제철보국에 어울리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최대 수요처인 건설업 장기 부진으로 범용재 판매가 부진하다. 이에 철강사들의 생산과 재고 부담만 쌓이고 있다. 해외서도 최우방인 미국이 우리철강업에 대한 과잉생산 여부를 조사 중이고, 유럽·영국은 탄소 다배출 방식의 범용재 생산을 빠르게 전환하도록 환경·통상 규제로 압박하고 있다.

한국 철강업 생존을 위해선 범용재 수급 규모를 줄이고 고부가 철강 생산 체계로의 신속한 전환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이에 정부도 오는 6월 K-스틸법 시행을 앞두고 범용재 설비 구조조정과 친환경·고부가재 생산 전환을 지원·규제 내용을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각 산업주체의 속도와 의지다. 모두가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일부 선제 조치(공장폐쇄 등)에 나선 철강사 외에는 전략 변화도, 구조조정 움직임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일부에선 “먼저 움직이지 말고 버텨보자”는 기류도 감지된다.

정부 역시 업계의 실질적 행동을 유도할 설득력 있는 지원·전환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정말 강한 산업전환 의지가 있는 것이 맞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쟁국들이 빠르게 달려나가는 상황이다. 시간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국내 산업 주체들에 가장 시급한 것은 박 명예회장의 ‘우향우’ 책임정신부터 되새기는 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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