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글로벌 철강산업은 유례 없는 구조적 전환기에 진입하고 있다. 흔히 철강산업을 두고 ‘탄소다배출 업종’이라 부르지만, 인류 문명의 뼈대를 이루는 철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해답은 명확하다. 철을 만드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석탄 기반 고로 체제를 친환경 공정으로 전환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기술적 난이도와 막대한 투자, 그리고 시장 불확실성이 얽힌 이 과정은 말 그대로 ‘험난한 여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대형 전기로 가동은 한국 철강산업은 물론 글로벌 녹색철강 전환 흐름 속에서 분명한 이정표로 평가할 수 있다.
우선 주목할 점은 전기로가 가지는 ‘브릿지(Bridge) 기술’로서의 전략적 가치다. 업계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탄소중립 해법은 수소환원제철이다. 하지만 상용화까지는 여전히 상당한 시간과 기술적 도약이 요구된다. 반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글로벌 규제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어서 탈탄소 대응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광양제철소의 연산 250만 톤급 전기로는 이러한 시간적 공백을 메우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고로 대비 최대 75% 수준의 탄소 저감 효과를 구현할 수 있는 대형 설비를 구축함으로써, 포스코는 환경 규제 대응을 위한 실질적 기반을 확보했다. 이는 단순한 설비 증설을 넘어 기업 경쟁력 방어를 위한 전략적 포석이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이번 전기로는 중요한 전환점을 제시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전기로는 철스크랩 기반 생산 특성상 불순물 관리에 한계가 있어 주로 건설용 강재에 국한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고급 강판, 특히 자동차용 강재 생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회의론도 존재했다. 과거 동부제철의 전기로 열연공장 실패는 이러한 인식을 더 강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포스코는 ‘합탕(合湯)’ 기술을 통해 이러한 고정관념을 허물고 있다. 전기로 쇳물과 고로 쇳물을 정밀하게 혼합하는 공정을 통해 탄소 배출을 대폭 줄이면서도 자동차 강판 및 고효율 전기강판 등 고부가 제품 생산이 가능함을 입증할 것이다. 이는 전기로의 역할과 가능성을 재정의한 기술적 진일보를 이뤄내는 단계로 보인다.
광양 전기로의 의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자원 순환과 신소재 산업을 아우르는 확장성 또한 주목할 대목이다. 철스크랩을 단순 재활용 자원이 아닌 전략 자원으로 전환함으로써, 국내 스크랩 선별·가공 산업 전반의 고도화를 촉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동시에 전기로 부산물에서 희소가스를 포집·활용하는 등 철강을 넘어 미래 소재 산업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다.
결국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은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기술적 불확실성과 비용 부담이라는 이중의 리스크 속에서 포스코의 광양 전기로 투자는 ‘선제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이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온 한국 철강산업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제 광양 전기로는 단순한 생산설비를 넘어선다. 급변하는 글로벌 저탄소 공급망 속에서 대한민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지탱할 핵심 인프라이자, 녹색철강 시대를 가늠하는 기준점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광양에서 시작된 변화가 한국 철강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재편해 나갈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