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강산업계의 라이벌인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미국에서 손을 맞잡았다. 국내 시장에서는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협력하는, 이른바 ‘코피티션(Co-opetition·협력적 경쟁)’의 대표 사례다.
최근 미국 루이지애나주 도널슨빌에서 착공한 HPLS(HYUNDAI-POSCO Louisiana Steel) 전기로 제철소는 단순한 해외 투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한국 철강산업이 직면한 통상 환경 변화와 탄소중립 전환,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읽힌다. 무엇보다 이번 협력은 ‘국내 경쟁, 해외 협력’이라는 새로운 산업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자동차강판과 고급 철강재 시장에서 경쟁을 이어왔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주요 시장의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별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 특히 미국 시장은 연간 2천만 톤 이상의 철강을 수입하고, 자동차 생산량만 1천만 대를 웃도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수요처 중 하나다. 이런 시장에서 한국 철강업계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경쟁보다 협력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HPLS 프로젝트는 양사가 각자의 강점을 결합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현대제철은 자동차강판 생산 기술과 현대차그룹이라는 안정적인 수요 기반을 갖고 있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 기술과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강판 제조 역량, 그리고 북중미 고객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현지에서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이 “양사가 협력하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회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가 기대를 모으는 이유는 미래 철강산업의 핵심 화두인 탄소저감 기술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HPLS는 직접환원철(DRI)과 전기로를 결합해 기존 고로 대비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이는 생산 체제를 갖춘다. 나아가 향후 천연가스를 수소로 대체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까지 적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전기로 기반 고급 자동차강판 생산은 기술적 도전 과제가 많은 영역으로 평가된다. 이 과정에서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기술과 현대제철의 자동차강판 생산 경험이 결합한다면 저탄소 고급 강재 시장을 선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다른 의미는 공급망의 현지화다. 미국은 이제 단순한 수출 시장이 아니라 현지 생산이 경쟁력의 필수 조건이 됐다. HPLS가 현대차와 기아의 북미 생산 거점은 물론 포스코가 확보한 북중미 고객사 공급망까지 담당하게 된다면 한국 철강업계의 미국 시장 영향력을 한층 키울 수 있다.
물론 국내에서는 양사가 여전히 경쟁 관계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의 판은 달라졌다. 기술 패권 경쟁과 공급망 블록화, 탄소규제 강화 속에서 국가 단위의 산업 경쟁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일본과 중국, 유럽 철강사들이 자국 산업 생태계를 기반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철강업계 역시 전략적 협력을 통해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분명 HPLS는 단순한 제철소 건설 프로젝트가 아니다. 이는 경쟁을 넘어 협력으로 나아가는 한국 철강산업의 새로운 실험이자, 탄소중립 시대를 준비하는 미래 투자다. 현대제철과 포스코의 공동 투자가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는다면, 이는 두 기업의 성장을 넘어 한국 철강산업 전체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경쟁이 최고의 성과를 만드는 시대가 있었다면, 이제는 협력이 새로운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